현대자동차 기프트카 시즌4 블로그 컨텐츠 - 사연 취재 [2013~2014년/아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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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자동차 기프트카 시즌4 블로그 컨텐츠 - 사연 취재 [2013~2014년/아이너스]
     컨텐츠 기획, 텍스트 작성, 이미지 디자인, 사진 촬영, 일러스트 제작

    <메인타이틀>
    창호 외길 인생 30년,
    희망을 노래하는 '창쟁이'


  • 기프트카에 신청하는 모든 분들이 그렇듯, 유명복 씨 또한 어렵고, 서럽고, 때론 이겨내기 버거울 정도의 현실과 마주하며 살아왔습니다. 선한 그의 인상이 말해주듯, 따뜻하기만 한 성품은 모질고 거친 세상의 공격을 견뎌내기에 충분치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창호에 있어서 만큼은 달랐습니다.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한 그였지만, 창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세상 그 어떤 전문가보다 진지한 눈빛을 보여주었으니까요. 시련 앞에 잠시 멈춰 섰지만, 돌아가기보다는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파며 전진하겠노라 말하는 순박한 이 남자. 희망을 노래하는 창쟁이, 유명복 씨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노하우는 그 누구보다 풍부한 58년 개띠, 유명복 씨. 빈손으로 시작하다시피 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키웠고, 또 그 이상의 좌절을 맛봐야 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 유명복 씨가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내리는 시련을 그저 온몸으로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때 술에 의존하기도 했지만, 그가 지나온 발자국을 돌이켜보면 오로지 한 곳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가족에 대한 사랑 말입니다. 

    처음 창호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졸업 직후부터였습니다. 학력도, 마땅한 기술도 내세울 것이 없던 시절이니 숙식만 해결할 수 있는 정도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뛰어든 일이었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이 일이 유명복 씨 자신의 천직이 되리라 생각지는 못했습니다. 



  • 물론 간절한 마음도 한 몫 했지만, 제대로 된 보수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명복 씨가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재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호 일이 자신에게 잘 맞았던 것이죠. 그렇게 기술을 하나 둘 자신의 것으로 만든 유명복 씨는 서른이 갓 넘은 나이에 소자본으로 첫 번째 창업을 하기에 이릅니다. 

    즐기는 자는 누구보다 앞서간다고 했던가요? 그의 사업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성공적이었습니다. 상가의 대형 쇼윈도 제작 및 설비에서부터 하이새시 창호, ABS 출입문, 방충망, 방범창, 대문, 현관문 시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을 했습니다.  94년에는 한 여인과 백년가약을 맺으며 두 아이를 갖는 등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이 행복한 나날들은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 하지만 IMF의 여파는 유명복 씨의 사업에도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1990년부터 10년을 넘게 이어온 사업이 연쇄부도로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유명복 씨의 아픔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 결혼 전, 아내와 연애를 하던 도중 아내에게 이미 두 아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깊어진 두 사람의 정을 떼어내는 것은 유명복 씨에게는 너무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 모든 것이 운명이다'라고 생각하며 아내의 전 아이들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 유명복 씨는 결혼 후 정말 악착같이 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명복 씨의 노모에게 치매와 중풍이 찾아왔고, 아내와 유명복 씨는 병간호 문제로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내는 유명복 씨와 함께 낳은 환별이와 용관이만 남겨둔 채 자신이 낳아 와서 같이 키웠던 두 아이만 데리고 집을 떠나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젖먹이 용관이와 이제 갓 걸음마를 뗀 환별이를 이웃의 친한 노래방 주인에게 맡기고 일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병환과 사업실패로 가뜩이나 쓰라렸던 그의 가슴은 매일같이 찢어지고 뭉개졌습니다. 함께 의지하며 헤쳐나가기에도 버거운 세상인데, 이제는 양 팔에 두 아이를 안은 채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답답한 마음에 술을 먹고 아이들을 찾으러 간 노래방에서 눈물로 한 곡조씩 부르던 '아빠의 청춘'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 지금 아르바이트를 위해 인천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딸 환별이는 어머니 없이 홀로 사는 아버지께 한없이 죄송한 모양입니다. 집에서 집안 일도 많이 도와드리고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입니다.

    독서와 글짓기가 취미인 둘째 용관이는 글짓기 대회에서 상장을 받기도 하는 등 재능을 보여 아버지의 마음을 뿌듯하게 합니다. 장차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가 기자나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수줍어하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어릴 적 공부를 마저 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은 아버지 유명복 씨. 하지만 어려워진 환경 탓에 아이들의 학업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특히 첫째 환별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접수 마감날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또 도와주지 못해 못난 아버지가 된 것 같아 지금도 미안하다고 말하며 그는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 유명복 씨는 2000년 IMF로 부도를 맞게 되면서부터 인천강화지역자활센터에서 일을 해왔습니다. 힘든 상황에 많이 좌절했지만 그때마다 특유의 우직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자활센터에서 창호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와중 자활센터에서 같이 일하던 양경애 씨(기프트카 시즌3 주인공)를 보며 진심 어린 축하와 함께 '나도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그래도 열심히 살지 않았냐고요?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았죠. 그렇지만 지난 15년은 목표가 없는 삶이었어요. 이제 제 인생 마지막 창업이라는 목표가 생겼으니, 30년 창쟁이 자존심 걸고 한 번 제대로 해보렵니다!"

    유명복 씨가 지치고 힘들 때, 마음으로 울며 부르던 아빠의 청춘. 그 노래의 가사처럼, 유명복 씨의 삶의 원동력은 아들 딸을 잘 키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여느 사람들 같으면 은퇴할 나이지만, 유명복 씨의 청춘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이제 달려가야 할 목표를 되찾았으니까요.



  • 아버지 건강을 걱정하는 용관이의 따뜻한 마음씨가 유명복 씨를 쏙 빼 닮았네요. 하지만 아버지는 힘들지 않으실 겁니다. 세상을 행복하게 하고, 또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창을 만들 날이 머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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