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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짧은 머리를 고수한다.

    처음으로 머리를 짧게 자른 시기는 10대 중반이었는데,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나에게 남자 같다는 말을 했다.

    내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머리카락 기장을 유지하고 편한 옷을 입었을 뿐인데

    나는 남자 같은 여자가 되어 있었다.

    너무 자주 들으니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탈 가부장제(탈코르셋)라는 단어와 그 의미를 듣자, 나는 나 자신을 좀 더 되돌아보았다.

    탈 브라를 하고

    거추장스러운 머리를 짧게 자르고

    꽉 끼지 않는 옷을 입고

    굽이 없는 신발을 신는 등 여성에게 강요되는 꾸밈 노동을 거부하는 것.

    그리고 외면뿐 아니라 내면에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내가 이해한 탈 가부장제다.

     

    나는 원피스를 입을 때 나의 큰 덩치를 혐오했고

    낙태에 대한 말을 들으면서 임산부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았고

    로맨틱한 옷을 입으면 소녀 같을 것으로 생각했고

    집안일은 엄마가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이미 가부장제에 길들어 내 안에서 자라난 머리카락으로

    시야가 완전히 가려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외면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에서 벗어났으나 내면은 아니었다.

    그 머리카락은 너무나도 질겨서 잘라내기 힘겨웠지만

    잘라내고 나니 세상의 부조리함이 보였다.

     

    여전히 나는 시야가 가려진 인간이다.

    그러나 내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계속해서 잘라낼 것이다.

    조금이나마 잘라낸 머리카락 틈 사이로 이미 사회에서 여성을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봐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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