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View
55
Love
1
comment
0
  • 범어동에서 이 곳으로 이사온지 올해로 10년이 넘었다. 낡은 주택의 이층 집에 월세를 얻어 엄마, 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몇 해 전 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동생마저 구직에 성공해 독립함으로써 혼자 이 넓은 집을 지키게 되었다.

     

    엄마는 자궁암 진단을 받고 정확히 1년을 버텼다. 거듭된 항암 치료로 뼈만 앙상해진 엄마는 돌아가시기 직전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남아있는 너희들이 걱정이다.' 정작 당신은 사경을 헤매면서도 홀로 남겨질 나와 동생 걱정을 끝까지 놓지 못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병실 옆에서 한참을 울었다. 엄마의 간절한 바람 덕분일까. 우리 형제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아랫집 아저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집주인 아저씨는 공군 중령으로 예편하셨다고 한다. 장교로 근무하던 나도 그 덕을 많이 보았다. 군복을 입고 집에 가면 후배라며 그렇게 좋아라 하셨던 기억이 난다. 주인 내외분 모두 독실한 천주교 신자신데 요즘은 봉사 활동에 열심이시다. 동네 폐지와 빈병을 모아 마당에 널어놓고는 이번에 얼마를 정산해서 성당 명의(名義)로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했네 하고 자랑을 하신다. 비록 월세를 내고 보금자리를 얻는 계약 관계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가족과 같은 친근함이 있다.

     

    지난 추석에는 제사에 보태라며 전과 가자미 등 여러 가지 제사 음식을 가져다주셨다. 명절 음식이 매번 남아 버리는 것이 부담스럽기에 이층까지 신경 쓰실 필요는 없다고 단단히 말씀드렸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받은 추석 선물 대부분을 아저씨 아주머니께 나눠드렸다. 그동안 받은 것에 비해 드리는 것이 없었기도 하고 사실 혼자 살기에는 필요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이쯤 되면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도 즐겨 찾던 커피를 마시며 걱정 한 스푼 덜어놓지 않았을까.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 참 다행이라며. 

>
이 작품을 콜렉트 하시겠습니까? / 아니오
콜렉트 하였습니다. 취소
정호(gauelbam) 님의 모든 작업을 감상하였습니다
정호(gauelbam) 님을 팔로우하고 피드에서 새로운 소식을 받아보세요
팔로우
피드 바로가기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