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

View
526
Love
2
comment
0
  • 아. 계획대로라면, 나는 분명 지금 자이살메르로 가는 기차에 올랐어야 했는데,

    난생처음 들어보는 맥그로드 간즈인지, 맥그로드 간지인지 발음도 확실하지 않은

    암튼 그 도시로 간다는 버스에서 세 시간째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뛰어내려 자이살메르로 가는 기차표를 사야 되나,

    맥도날드만 생각나게 하는 이름의 정보 하나 없는 도시행 버스에서 계속 기다려야 되나를 고민하는 중에

    세 시간이 후딱 지나 이미 바깥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왜 여기서 세 시간이나 기다려야 되는지 뒤늦은 고민이 들 때쯤 드디어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사설 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공교롭게도 델리에서 만나지 못했던 여행객들을

    버스 뒷자리에서 만나 일렬로 쪼르륵 앉아 인사를 나누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쩌다 그 버스에서 만난 일행들과 꽤 길다면 긴 일정을 함께 하게 될 줄은 더더욱이나..

    맥그로드 간즈라는 도시도 처음 들어봤으니, 델리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자고, 자고 또 자고 일어나도 새까만 길은 끝날 줄을 몰랐다.

    허리 디스크가 무엇인지 느끼게 될 때쯤 버스가 서는 소리가 들렸다.

    주섬 주섬 정신을 챙기고 버스에서 내리니 아직 눈앞이 캄캄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캄캄함에 익숙해지기 전에 캐캐 묵은 소변 냄새가 코를 먼저 자극했다.

    어둠에 막 익숙해진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버려진지 10년쯤은 되어 보이는 버스정류장이다.

    착즙기에서 있는 대로 즙을 짜내고 나온 뭉그러진 마 쪼가리 마냥 지친 이 몸 하나 누일 숙소 따윈 보이지도 않는다.

    정류장 주위로는 하늘보다 더 까맣게 삐죽삐죽 솟은 나무들이 이 근처엔 마을이 절대 없음을 한번 더 확신시켜주었다.

    당장이라도 버스 기사의 멱살을 휘어잡고 개떡 같은 숙소라도 좋으니 당장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는 쇳소리 같은 신음뿐.

    다행히 아직 정신줄을 놓지 않은 다른 한국산 마 쪼가리가 맥그로드 간즈는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그 버스 기사는 여기는 다람살라의 버스 정류장이고 맥으로 가고 싶으면 차를 타고 20분쯤 더 가야 된다고 일러주었다.

    다시 한국산 마쪼가리가 그럼 어느 버스를 타야 되냐고 물으니,

    지금 시간엔 버스가 없으니 아침까지 기다리던지 뭐 체력이 된다면 걸어가던지 라는 제스처로 양손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귀까지 닿을 정도로 한번 으쓱해 보였다.

    이쯤 되니 이 버스기사의 멱살이 아닌 귓방망이를 한대 후려갈겨 주고 싶어 졌다.

    당장 눕고 싶은데 적어도 세 시간을 이 춥고 소변 냄새나는 곳에서 기다리라니. 제정신인가.

    어쩌다 같은 버스를 타 원치 않게 동병상련의 아픔을 맛보게 된 다섯 한국산 마쪼가리들은 인도 북쪽의 산 중턱,

    버려진지 10년은 된 것 같은 버스정류장에서 미아 아닌 미아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아침까지 추위에 떨어야 되나 걱정하며 한참을 절망적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뜬금없게 어둠을 뚫고 오토 릭샤 한대가 튀어나왔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으로 오토 릭샤를 막아 세우고 맥도날드 아니, 맥그로드를 외쳤다.

    아직 더 쥐어 짜낼 마즙이 남아있었나 보다.

    오토릭샤꾼은 다섯 마쪼가리들을 한 번에 태울 자리는 없다며 단호히 no 를 외쳤다.

    가격을 계속 올려 보았지만 그 릭샤꾼은 꿈도 꾸지 말라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뭐든 되는 no problem인 이 나라에서 이렇게 단호한 릭샤꾼을 만나게 될 줄이야..

    자포자기 심정으로 마지막에 부른 가격의 더블을 외쳤다.

    단호한 릭샤꾼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콜~~~~!!!!! 이라는 제스처로 큰 눈동자를 굴리며 뒷자리에 타라고 눈짓을 보냈다.

    이제부터는 다섯이 어떻게 구겨타는지가 문제였다.

    평지도 아닌 가파른 산길을 가냘픈 오토릭샤를 타고 가야 했기에 떨어지지 않도록 잘 구겨타는게 중요포인트였다.

    게다가 다들 상체만 한 배낭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이쯤 되니 마음을 돌려준 오토릭샤꾼이 고마워질 지경이다.

    기네스북에나 나올 법한 티코에 몇 명이나 탈 수 있는가를 재연하듯이 어찌어찌 구겨타고 드디어 맥으로 출발했다.

    릭샤 천장에 목이 꺾여 내일 아침 당장 담이 올 것 같았지만 20분 후면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아픔이 가시는 듯했다.

>
이 작품을 콜렉트 하시겠습니까? / 아니오
콜렉트 하였습니다. 취소
mercioon 님의 모든 작업을 감상하였습니다
mercioon 님을 팔로우하고 피드에서 새로운 소식을 받아보세요
팔로우
피드 바로가기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