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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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에 있는 인쇄소는 밤낮 가릴 것 없이 하루종일 인쇄기가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하다. 디자이너가 인쇄물을 넘기는 시간이 대체로 늦은 새벽 시간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소비하는 인쇄물량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끊임없이 시안을 만들고 또 수정 시안을 만들어보고 인쇄해서 확인해보고 최종 작업물이 나올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인쇄가 넘어가는 짧은 순간에도 더 좋은 디자인 아이디어에 골몰한다. 매일 밤 전국의 수많은 디자이너들에 의해 창안된 아이디어들이 인쇄물로 탄생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양의 디자인을 인쇄해야 하는 인쇄업자에게는 디자이너가 넘겨준 디자인이 좋건 나쁘건 그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다. 그들은 단지 오늘 처리해야할 디자인이 잉크를 얼마나 소비할 것인지, 잉크의 재고는 넉넉한지, 얼마를 할인해줘야 손님이 만족을 해서 다음에 다시 찾아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앞선다. 그래도 모든 고민 중에 최우선적인 고민은 매출액에 따른 마진율이다. 그것은 거의 잉크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라면 고객으로부터 검정색으로 가득찬 시안을 받는 상황일 것이다. 그런 디자인에 할인은 없다. 그것은 오직 인쇄업자에게 구겨진 인상만을 남겨주고 수익에 대한 고민만 더해 줄 뿐이다.

     

    인쇄업자가 매순간 마주하는 디자인 시안들은 화면에 찍혀있어서 잉크로 분사될 준비를 하는 물질로 밖에 더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고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스크린에 찍힌 픽셀의 위치와 색상 값을 그들이 생각하는 잉크량으로 환원될 화폐의 가치로 전환해 볼 수 있다.

     

    특정한 형태를 가지고 인쇄될 지면을 기다리고 있는 디자인 작품이 단순히 물질로서의 잉크로 환원되기 위해서는 형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간격을 두고 흩뿌려져 있는 픽셀들은 오히려 분사될 잉크량을 계산하는데에는 혼동만 준다. 디자인이 갖는 형태를 모두 무시하고 픽셀을 화면의 아래부터 차곡차곡 쌓으면 계산하기가 더 편리할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 인쇄업자의 관점에서 본 디자인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쇄된 잉크가 무거운 색상을 우선적으로 아래쪽부터 차곡차곡 쌓이게 하면 디자인 작업에 사용된 잉크의 양을 파악하기에 용이하다. 인쇄업자가 매일 마주하는 인쇄된 매체들은 단지 집결된 잉크의 덩어리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A Century of Graphic Design》, Jeremy Aynsley, Mitchell Beazley,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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