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집어 든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꽤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위였지만,
나는 그 부담감을 생각보다 수월하게 배때지로 짓뭉겨내었다. 그리고 오늘, 과거의 그곳에서 나를 발견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원했고, 선택했고 받아들이고자 했던 나를 찾았다.
그러기 위해 나는 수십 번도 더 쑤시고 헤집고 거칠게 난도질했다.
그로 인한 상처는 내가 그랬던 만큼 수십 번도 더 넘게 생겼다가 낫기를 반복했고,
흉터 위에 흉터가 계속해서 덮어 씌여졌다.
다시는 잊지 못하게 각인시키고자 했다. 되뇌고 읊어댔다.
하지만 그런 내 의지와는 반대로, 그곳엔 그저 쓰라린 공허함 만이 남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들은 마치 해변가의 모래알보다도 더 가볍게 휩쓸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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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Narcissus)
'자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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